스펙이 자주 바뀌는 프로젝트에서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감정과 판단을 분리하는 훈련이 몸에 밴 분.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플랫폼 이니셔티브로 한동안 얽혀 있었어요. 다섯 개 프로덕트 팀의 공통 요구를 엮어 경계를 긋는 작업이었는데, 정치적 장애물까지 정리해내시던 솜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신입 온보딩 세션을 자원해서 맡아주셨는데, 그 자료가 지금도 팀에서 계속 재사용되고 있어요. 단순히 시스템 설명이 아니라 "왜 이렇게 설계됐는가"까지 스토리로 풀어내신 자료였죠. 자료를 만드는 데 몇 주를 쓰셨을 텐데, 공치사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배포해두셨던 게 고요한 얼룩말님다웠습니다. 그 자료로 온보딩한 사람이 지금까지 열 명이 넘어요. 파트너사 미팅에서 불리한 조건이 제시됐을 때, 조용히 근거 자료를 꺼내셔서 판을 뒤집은 적이 있어요. 미팅 전에 미리 예상 시나리오를 준비해두셨던 거였죠. 말수는 많지 않지만 꺼낸 한 마디가 전체 협상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순간이었습니다. 끝나고 우리 팀 매니저가 고요한 얼룩말님 덕에 숨통이 트였다고 직접 감사를 전했어요.
기술 의사결정 근거가 훌륭하지만, 최종 선택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해주시면 비전문가도 따라가기 편할 것 같아요. 문서는 촘촘하지만 그 문서를 다 읽을 수 없는 이해관계자가 많거든요. 상단에 "TL;DR" 한 줄을 더하시는 습관은 고요한 얼룩말님의 역량을 조직 전체가 활용하게 해줄 겁니다.
데이터로 의사결정하는 팀에 잘 어울려요. 감보다 숫자가 우선되는 환경에서 훨씬 빛나실 거예요. 다만 정성적 맥락도 놓치지 않으시는 편이라, 숫자만 있는 조직보다는 둘의 균형을 중시하는 팀이 베스트일 것 같습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이 후기를 씁니다. 함께했던 시간의 좋은 부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고요한 얼룩말님의 강점이 다음 팀에서도 제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제 커리어의 한 챕터를 같이 써주신 분. 지나간 프로젝트들을 돌아볼 때마다 고요한 얼룩말님이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감사드린 적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이렇게라도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