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드러나는 건 일이 안 풀릴 때라고 하잖아요. 수줍은 바다사자님은 그 순간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셨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다음 수를 바로 꺼내오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내부 디자인 시스템을 함께 만들었던 프로젝트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수줍은 바다사자님이 컴포넌트 API 일관성을 잡아주셨는데, "왜 이렇게 설계했는가"를 한 컴포넌트마다 문서화하셔서 이후 누구나 같은 기준을 쓰게 됐어요. 결제 리뉴얼 때 수줍은 바다사자님이 백엔드 리드를 맡으셨습니다. 외부 PG 3곳과의 인터페이스 정의부터 기존 결제 이력 마이그레이션 검증까지 까다로운 부분을 전부 소유권 가지고 끌고 가셨어요. 런칭 후 결제 실패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게 그 결과물입니다.
프로젝트 킥오프 전에 이해관계자 모두와 1:1을 돌리셔서, 시작 이후엔 큰 갈등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각자의 속마음과 우려를 미리 듣고 기록해두신 덕에, 공식 회의에서는 모두가 이미 한 번 말한 내용을 마주하는 셈이었어요. 이 "사전 정렬"이 프로젝트의 절반을 끝낸 거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사내 해커톤에서 전혀 다른 팀에 있었는데도 막히는 부분을 도와주러 오셨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 팀 코드는 수줍은 바다사자님이 처음 보시는 스택이었는데, 짧은 시간 안에 구조를 파악하시고 힌트를 주고 가셨죠. 경쟁 상황에서도 다른 팀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여유가 인상 깊었습니다.
본인 업무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시는 편이라 오히려 핵심이 흐려질 때가 있었어요. 선택과 집중이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관심사가 많은 건 수줍은 바다사자님의 자산이지만, 모든 관심사를 동시에 돌보려 하면 어느 것도 충분히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분기에 한 두 주제로 좁히는 실험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를 오가야 하는 자리에 잘 맞습니다. 양쪽 언어를 다 쓰실 줄 아시거든요. 프로덕트 매니저든 테크 리드든, 경계에 서는 역할에서 본인의 강점이 복리로 쌓일 겁니다.
일을 잘하는 것과 같이 일하기 좋은 건 다른 축인데, 수줍은 바다사자님은 그 둘 다였어요. 둘 중 하나만 갖춘 사람도 귀하지만, 두 축을 다 갖춘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그 드문 자리를 이 팀에서 본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이 후기를 씁니다. 함께했던 시간의 좋은 부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수줍은 바다사자님의 강점이 다음 팀에서도 제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